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국정개입 (문단 편집) == 국정을 주도한 [[비선]]모임 == 최순실과 가까웠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따르면 ‘[[비선]]실세’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장은 인터뷰에서 “최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며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참석자와 관련해 “적을 때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다. 나도 몇번 참여한 적이 있다”며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하였다. K스포츠 관계자는 “이곳에서 회의할 때 대부분 (차은택의 절친한 후배로 알려진 그래픽디자이너)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이 와 있었다. 그 곳에서 (차은택과 가까운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김홍탁도 만났다”다고 하였다. 건물 인근 가게를 하는 ㄷ씨는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의 얼굴사진을 지목하며 “이 사람이 왔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차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 아니다. 이름을 빼줬으면 좋겠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전 총장은 최순실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고 이름을 분명히 밝혔다. 정호성 제1부속실장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최순실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67209.html|#]] 비선모임은 주로 논현동에 있는 한 건물에서 했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7414.html|#]] 종래 박근혜가 유독 대면보고를 잘 받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2&aid=0002008466&sid1=001|#]] 그것도 실은 최순실한테 서면보고가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79&aid=0002887790|#]]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중대한 통일·외교·안보정책에도 최순실이 개입한 정황이 나타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면서,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조차 의아하게 여긴 해당 정책 결정 과정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양상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월 7일 박근혜정부는 첫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확성기]] 방송을 통한 대북심리전 재개를 꺼내들었다. 당시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의문을 보였는데 한 당국자는 “이날 오전만 해도 대북 방송 재개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오후 들어 갑자기 바뀌었다”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청와대 안보실 공식 조직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고리 실세’가 개입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이라는 추정만 무성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과정도 비슷했다. 2월 초까지도 청와대와 정부는 ‘개성공단은 대북 제재 수단이 아니다’라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또한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주무부처인 [[통일부]] 쪽의 ‘1년 일시적 중단’ 의견을 묵살한 결과였던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형식적으론 2월 1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결정됐지만, 이미 8~9일 박근혜가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박근혜가 주재한 7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선 [[개성공단]] 관련 논의가 없었다. 이 과정에 최순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의심된다. 최순실을 자주 만났던 한 지인은 '''“개성공단이 폐쇄될 무렵 최순실씨가 ‘앞으로 2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박근혜의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대북정책 이면에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붕괴론]]’ 인식과 일맥상통한다.[* 이건([[북한붕괴론]]) 이중으로 헛소리다.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가 뒤를 봐주는 이상[* 그나마 러시아는 남북통일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 등 다른 문제를 해결하면 남북통일에 긍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크지만, 중국은 북한이라는 좋은 완충지대를 상실하는 셈일 뿐더러 [[베트남 통일]] 이후에 일어난 [[중국-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에 한반도의 남북통일 자체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쉽게 스스로 붕괴될 리 없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갑작스런 북한의 붕괴는 한국에게 아주 심각한 경제적 재앙이라는 점이다. 북한 경제를 흡수하는데 성공하려면 사실상 나라 하나를 새로 세울 만큼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온다는 게 정설이다. 당장 [[베트남 통일]] 당시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도 [[베트남 민주 공화국|남베트남]] 붕괴 직후 남베트남 영토를 바로 자국에 병탄한 게 아니라 남베트남 영토에 괴뢰국인 [[남베트남 공화국]]을 세워 1년 동안 존속시켰으며, 본격적으로 베트남이 통일된 뒤에도 국부인 [[호찌민]]의 뜻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베트남 공산당]]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났다. [[예멘]]은 어설픈 통일 때문에 내전으로 엄청난 혼란에 빠졌으며, 베트남이나 예멘보다 훨씬 성공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한 [[독일]]조차도 통일의 부작용 자체는 피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도 정부 유관 부처에서 제안한 게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순실]]이 주도한 비선모임의 논의 주제 가운데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이 포함돼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67436.html#csidx53c5d137dee7e4cb1b4a65af5b9f08b|#]]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